일본군‘위안부’피해자 증언 영상 해제 및 콘텐츠화 연구



잃어버린 기억, 함께-다시 만든 기억



난 이 눌러서 말린 꽃이 죽었다고 생각 안 혀. 줄기가 꺾이고 물기가 말라 비틀어졌지만, 

오히려 색깔이 더 곱고 생화보다 오래 가잖어. 죽은 게 아녀

-다큐멘터리<그리고 싶은 것>(2012년)중에서


“니 찾으로 오꾸마” - 이송과정에서 겪은 폭력과 이산의 경험


1927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심달연은 열세 살 무렵 언니와 함께 들에서 쑥을 캐다가 붙잡혀 위안소로 끌려갔다. 2007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LA세계대회에서 증언자로 참석한 심달연은 언니와의 이별과 이송과정에서 겪은 폭력, 그리고 그 충격으로 인해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언니랑) 둘이 붙들고 타니께 막 발로 찹디다. 차이기를 얼마나 차였는지.. 그래가지고 차에 탔어요. 

차에 탔는데 뭐 어데를 싣고 가는지..(중략) 갔어예. 시방 생각하면 학교 애들인 거 같아예. 

여기다가, 허리에다가 이렇게 책보를 묶았어예. 그래가 하나씩 둘씩 나오데예. 나오는 족족... (중략) 탔어예.”

(A00006110_No.056-2007.10.06._LA세계증언대회 13:50-16:50)


심달연은 언니와 함께 붙잡혀 차에 태워져 끌려가다가, 또래 여자아이들이 같은 차에 실려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허리에 책보를 묶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나오다가 붙들린 초등학교 6학년생들이었다고 한다. 차에 실려 창고로 가서 하루 이틀을 보냈는데 거기에도 여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매일 매일 보내던 일상과 이제껏 맺어온 관계는 하루아침에, 영문도 모른 채, 느닷없이 단절되었다.


‘위안부’ 피해를 말할 때 강제 이산(離散)의 경험은 다른 사안에 밀려 좀처럼 긴급하고 절박한 사안으로서 다뤄지지 않는다. 심달연의 증언에서는 헤어진 언니 얘기가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언니 얘기로 말문을 열고, 언니 얘기로 말을 맺으면서도 “니 찾으러 오꾸마”라고 말했던 똑똑한 언니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걸 보니 죽었을 것이라는 절망감으로 긴긴 세월을 살아왔다. 실종인지 사망인지 확인할 길 없는, 가장 가깝고 소중했던 존재에 대한 상실감은 오랫동안 어떤 관계로도 대체할 수도, 쉽사리 회복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언니와는 이송 과정에서 헤어졌다. 언니는 다른 위안소로 끌려갔지만,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심달연은 언니가 끌려가면서 했던 말,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그 말 만큼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니 찾으러 오꾸마.”

 

언니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서 작은 배도 타고 큰 배도 타고 그렇게 어딘지 모를 곳에 도착한 심달연은 야산으로 들어가면서 “언니가 데릴러 온다 캤는데, 이런 데를 와서 우야꼬”하고 걱정이 되었다. 위안소에서 못지않게 이송 과정에서도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차에서도 배에서도 군홧발로 차이기 일쑤였다. 위안소의 위치나 지역명 등은 기억하지 못한다. 너무 추웠다는 것 말고는 지역의 특징도 잘 생각이 안 난다.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열세 살 심달연은 “어디가 어딘둥” 알지 못했다. 언니의 말을 뒤로 하고 계속되는 이동으로 작은 강을 작은 배로 건넜다. 야산으로 들어가면서 “언니가 데릴러 온다 캤는데, 이런 데를 와서 우야꼬”하고 걱정이 되었다.¹


LA세계대회에서 증언하는 모습
LA세계대회에서 증언하는 모습
「언니와 함께 끌려가서」(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한국정신대연구소 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3』, 한울, 1999.)
「언니와 함께 끌려가서」(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한국정신대연구소 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3』, 한울, 1999.)


귀국 후에도 정신착란과 기억상실증 속에서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았던 심달연은 정신적 어려움이 조금 나아졌을 때조차 언니가 자기를 찾아오지 못할까 봐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으려고 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비단 언니뿐만 아니라 심달연 자신이기도 하다. 이산의 경험은 심달연을 자신의 증언 속 어릴 때 그 모습 그 시간대 속에 가두지만, 동시에 그 갇힌 시간대 속에서만 언니가 살아있다는 역설이 있다. 심달연의 증언은 함께 트럭에 실렸던 6학년 아이들, 창고에서 만난 여자들, 그리고 위안소 생활을 함께 했던 ‘위안부’들은 저마다의 이산 경험 속에서 살아왔으리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1) <A00006110_No.056-2007.10.06._LA세계증언대회>, 17:38 ~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