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피해자 증언 영상 해제 및 콘텐츠화 연구



생애 요약

1918년 전라북도 이리 가난한 집의 맏딸로 태어났다. 1937년 저녁거리를 마련코자 쑥을 캐고 있는데,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해 준다며 남자가 끌고 갔다. 이리역에서 다른 여자들과 기차에 태워져 상하이의 육군 주둔지로 보내졌다. 상하이 위안소에서 지내다 해방이 되자 조선사람들을 따라 귀향하였다. 고향에서 일 년 쯤 지내다 첫 번째 결혼을 하였고, 남편과 사별한 뒤 두 번째 결혼을 하였다. 피해사실을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다가 친구가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이금주를 소개해 주어 1991년 ‘위안부’ 피해를 처음 신고하였다. 1993년 ‘부산 「종군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공식사죄청구소송’(일명 ‘관부재판’) 2차 제소에 원고로 참여하였고, 이후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소송이 최종 기각될 때까지 지원단체들과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재판 투쟁을 함께 했다. 두 번째 남편과 사별 후 혼자 광주에서 지내다 2005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쉼터 ‘우리집’으로 이주하였으며, 이후 수요시위 등에 참여하여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지속했다. 2017년 4월 4일 100세의 일기로 영면하였다.


생애 시간표

1918년
  • 전라북도 이리 출생
  • 삯일로 생계를 마련하는 가난한 집안에서 유년을 보냄
1937년
  • 식사 준비를 위해 나물을 캐다가 남자의 감언에 이끌려 동원됨
  • 부모에게 인사를 하고 가고 싶다고 했으나, 남자가 손을 끌어 당겨 무섭고 부끄러워 그대로 끌려감
1937~1945년
  • 이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연행됨. 상하이에서 트럭을 타고 육군 주둔지로 끌려가 군용 텐트 근처의 작은 오두막에 여자들이 한 사람씩 배치됨
  • 해방이 될 때까지 상하이 위안소에서 생활함
1945년
  • 해방이 되자 조선인들을 따라 귀향
1947년 경
  • 귀향 후 일 년 정도 후에 이모의 소개로 아들이 하나 있는 남자와 결혼
-
  • 첫 번째 남편과 사별 후 재혼하여 광주에 거주
1991년
  •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에 피해 신고
1992년
  • 정부 적십자사에 피해 신고
1993년
  • ‘부산 「종군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공식사죄청구소송’(이하 ‘관부재판’) 2차 제소의 원고로 참여
1993~2003년
  • 관부재판 원고로 일본 법정에서 증언
  • 정신대문제 대책 부산협의회 및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등의 시민 활동가들과 함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에 참여
2005년~
  •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 ‘우리집’으로 이주
  • 수요시위 등에 참여하여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지속함
2017년
  • 4월 4일 별세

  * 생애 시간표는 행정자료 및 증언 영상을 우선적으로 참조하고, 누락된 부분은 기존 증언집 및 기타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