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피상적인 사과는 거부한다”
“당신들은 나를 잡초같이 취급, 짓밟고 다녔으나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다.
성의가 없는 피상적인 사과는 더 이상 용서할 수가 없다.”
- 『한국일보』, 1992.3.3.
새겨진 증언, 흐르는 증언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 운동사나 법정 투쟁의 중요한 장면에는 황금주의 증언이 따옴표로 묶인 채 자주 등장한다. 이를 테면, UN 차원의 첫 일본군‘위안부’ 보고서라 일컬어지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1996)에 “영등포구 등촌동에 사는 73세 황금주”의 증언이 등장하기도 하고, 2000년 황금주를 비롯한 중국, 대만, 필리핀 등 4개국 출신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왕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미국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황금주 대 재팬(Hwang Geum Joo v. Japan)’이라 불린다. 그런가 하면 황금주의 증언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집회, 아시아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보상 문제, 일본의 역사교과서 규탄 대회 등을 다룬 신문 기사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민병갑, 서옥자 등의 학자, 활동가의 저서에도 등장한다. 일본에서 발간된 증언집이나 연구서에는 황금주의 증언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고, 영어로 출간된 문학작품에도 황금주의 증언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1991년 11월 밤, 김학순의 증언을 보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다는 황금주는 일본군‘위안부’ 운동 초기부터 목소리를 내어 왔다. 황금주의 증언은 UN보고서, 재판 기록 등 공식문서에 새겨진 것이자, 국가를 넘어, 언어를 넘어 흘러 다니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황금주의 삶과 증언을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