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피해자 증언 영상 해제 및 콘텐츠화 연구



증언의 영향력과 국제사회의 반향


  황금주의 말은 국경을 넘어 세계로 향했다. 미국의 작은 한인교회에서 시작된 증언은 기자회견에서, 거리 시위에서, 유엔에서, 법정에서 공적인 발화로서 확산되어 나갔다. 어느새 황금주의 곁에는 그녀의 삶과 투쟁에 합류하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생겨났고, 연쇄적인 연대의 장(場)은 유엔이라는 국제무대와 다른 나라의 법정으로까지 퍼져나갔다.




  유엔인권소위원회에서의 증언


  황금주는 1992년 8월 17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참가해 한국인 피해자로서는 처음으로 유엔에서 위안부 피해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이효재 공동대표와 신혜수 국제위원장이 함께 참가한 유엔인권소위원회에서 ‘위안부’ 문제는 ‘현대형 노예제’ 분과에서 제16의제로 채택되었다. 이 자리에서 신혜수는 ▲일본 정부의 직접 개입 ▲한국여성의 강제 연행 ▲위안소에서의 피해 실태 등을 알림으로써, 유엔에 진상을 조사할 것과 일본정부에 책임과 보상을 요구하는데 나서줄 것을 촉구했고, 결과적으로 1993년 8월 25일, ‘현대형 노예제’ 실무회의 권고를 지지하는 결의 및 전시노예제 문제 특별보고관을 임명하는 결의를 이끌어냈다.


유엔인권소위원회 (사진: IMAGE0056_92 유엔인권소위원회) -관련 기사  「정신대 문제 유엔에 정식 제기」(『한겨레』, 1922.8.9.) 「정신대 문제 진상조사 활기」(『한겨레』, 1992.12.2.)

유엔인권소위원회 '전시 하 조직적 강간, 성노예제 및 그와 유사한 관행' 문제 특별보고관 린다 차베즈(Linda Chavez)는 1995년 5월에 필리핀(5.19~22), 한국(5.23~27), 일본(5.27~31)을 각각 방문하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터뷰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조사를 수행하였다. (사진 출처: 아카이브814)


  당시 여러 신문에 황금주의 국제적인 활약상이 연일 보도되었던 것에 반해, 정작 황금주의 증언은 기자회견장에서의 간단한 요약 등을 제외하고는 발언 전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공적 기록에 담기지 않았다는 아쉬움의 한편에는 1990년대 초반은 연구자, 변호사, 활동가 등 곁에 선 사람들이 당사자의 목소리에 공명하기 시작한, 목소리에 목소리를 더해가는 시대적 배경이 있기도 하다.


  1992년 12월, 정대협은 유엔인권소위원회의 특별보고관 테오 반 보벤(Theodoor Cornelis van Boven)을 초청하여 국제인권협약과 일본군‘위안부’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이때 황금주도 강덕경, 이용수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테오 반 보벤은 유엔인권위원회에 <인권과 자유에 중대한 침해를 입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 및 회복의 권리에 관한 연구>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피해자들이 국가에 의해 적절한 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진상조사, 적절한 조치의 실행, 책임자 재판, 희생자들에 대한 의료적 조치 제공, 가족에게 배상 등의 의무를 가지며, 유엔 등 국제기구 및 정부 간 조직들이 배상의 수행을 지원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유엔서 「정신대」 증언」(『관악신문ㄴ, 1992.08.24.) 기사에 따르면, 황금주는 8월17일 유엔에서 증언을 했는데, 증언 전문은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 유엔인권소위원회 회의에서 신혜수(세계교회협의회 국제문제위원회)의 발언은 유엔 디지털 라이브러리의 공식 자료로 전문이 기록되어 있다.
「유엔서 「정신대」 증언」(『관악신문ㄴ, 1992.08.24.) 기사에 따르면, 황금주는 8월17일 유엔에서 증언을 했는데, 증언 전문은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 유엔인권소위원회 회의에서 신혜수(세계교회협의회 국제문제위원회)의 발언은 유엔 디지털 라이브러리의 공식 자료로 전문이 기록되어 있다.
1992년 12월 11일 한국여성연합회에서 열린 유엔 인권소위원회 특별보고관 테오 반 보벤과의 간담회. 이영숙, 이효재, 테오 반 보벤, 강덕경, 황금주, 이용수, 정진성, 강정숙, 도쓰카 에쓰로, 김학순, 윤정옥 등이 참석했다. (IMAGE0934_921211 특별보좌관 반 보벤 간담회(3)
1992년 12월 11일 한국여성연합회에서 열린 유엔 인권소위원회 특별보고관 테오 반 보벤과의 간담회. 이영숙, 이효재, 테오 반 보벤, 강덕경, 황금주, 이용수, 정진성, 강정숙, 도쓰카 에쓰로, 김학순, 윤정옥 등이 참석했다. (IMAGE0934_921211 특별보좌관 반 보벤 간담회(3)



과거의 인권유린에 대한 배상은 금전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권력남용과 범죄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에게 행해진 손상과 불의를 인정함을 함축한다. 배상은 또한 진상이 규명되고 책임이 명백히 설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배상은 보다 광범위한 전략과 정치적, 사회적, 범죄적 정의의 정책의 일환이다. 그러한 정의는 비처벌에 반대하며 국제인권기구에 의해 재차 제시되었듯이, 진상조사와 범해진 범죄와 남용의 책임자들을 재판할 것을 요구한다. 동시에 배상은 정의를 실현하고 고통을 초래한 과오를 수정할 뿐만 아니라, 방지적 전략과 정책의 일부이다.

-테오 반 보벤, 「중대한 인권침해의 희생자에 대한 배상」, 『정신대 자료집IV』, 1993, p. 173.





  ‘미국’ 법정에 선 황금주 - 황금주 vs. 재팬

  황금주를 비롯한 중국, 대만, 한국, 필리핀 출신의 ‘위안부’ 생존자 15인은 외국인불법행위손해배산청구법(Alien Tort Claims Statute, ATCS)에 근거하여 2000년 미국 연방지방법원(US District Court for the District of Columbia)에 일본 정부를 제소했다. 황금주 vs 재팬’으로 불리는 이 소송은 일본에서의 사법적 구제가 어려울 경우, 관할권을 인정하는 다른 나라의 법원에 제소하는 방안을 제안한 게이 맥두걸의 보고서를 단서로 한다. 맥두걸은 국제법이나 미국의 조약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에 대해 미국 법원에 관할권을 부여하는 ATCS를 그 예로 들었다.

 

유엔인권소위원회 특별보고관 게이 맥두걸(Gay J. McDougall)이 1998년 6월 22일 제출한 <전시 하 조직적 강간, 성노예제 및 그와 유사한 관행에 관한 특별보고관 최종보고서>´(Sexual slavery and slavery-like practices during armed conflict Final report). 보고서에서 맥두걸은 위안소를 설치, 운영하고 ‘위안부’를 동원한 일본군과 일본 정부의 행위가 국제법 위반임을 논증하고, 일본 정부에게 법적 배상 및 관련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였다. -참고: 아카이브814 맥두걸보고서(국문 번역)
유엔인권소위원회 특별보고관 게이 맥두걸(Gay J. McDougall)이 1998년 6월 22일 제출한 <전시 하 조직적 강간, 성노예제 및 그와 유사한 관행에 관한 특별보고관 최종보고서>´(Sexual slavery and slavery-like practices during armed conflict Final report). 보고서에서 맥두걸은 위안소를 설치, 운영하고 ‘위안부’를 동원한 일본군과 일본 정부의 행위가 국제법 위반임을 논증하고, 일본 정부에게 법적 배상 및 관련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였다. -참고: 아카이브814 맥두걸보고서(국문 번역)


  이 소송은 황금주를 비롯한 6인의 한국인, 그리고 중국인, 필리핀인, 대만인을 포함한 15인을 원고로 하여 동종 사건의 피해자에게 승소 판결의 효력이 미치는 ‘집단소송’이었다. 소송의 목적은 배상과 사과, 문서 공개를 청구하고, 일본 정부의 행위가 외국인불법행위손해배상청구법과 강요된 성매매 및 강간 금지 규범에 반한다는 확인판결을 구하는 것이었다. 황금주는 미국 방문 시, 기자회견과 거리 시위에도 참여하여 목소리를 냈다.


2000년 9월 18일 워싱턴연방지방법원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집단소송을 제소하던 날, 미국무부 앞에서 시위에 나선 횡금주. 오른쪽 끝부터 황금주, 김순덕, 문필기(사진: 'Sex slaves' sue Japan, 2000년 9월 19일 BBC뉴스) http://news.bbc.co.uk/2/hi/asia-pacific/931367.stm
2000년 9월 18일 워싱턴연방지방법원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집단소송을 제소하던 날, 미국무부 앞에서 시위에 나선 횡금주. 오른쪽 끝부터 황금주, 김순덕, 문필기(사진: 'Sex slaves' sue Japan, 2000년 9월 19일 BBC뉴스) http://news.bbc.co.uk/2/hi/asia-pacific/931367.stm
2000년 9월 18일 일본군'위안부' 소송을 위해 워싱턴DC의 National Press Club에서기자회견 중인 원고대표 황금주. 왼쪽부터 소송팀에 참여했던 재미한인변호사인 한태호 변호사, 마이클 하우스펠트, 배리 피셔, 황금주, 정연진(사진: 통일뉴스, 2016년 4월 28일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433)
2000년 9월 18일 일본군'위안부' 소송을 위해 워싱턴DC의 National Press Club에서기자회견 중인 원고대표 황금주. 왼쪽부터 소송팀에 참여했던 재미한인변호사인 한태호 변호사, 마이클 하우스펠트, 배리 피셔, 황금주, 정연진(사진: 통일뉴스, 2016년 4월 28일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433)


  이 소송에서 가장 큰 쟁점은 미국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관할권을 갖는지의 여부, 즉 국가면제의 법리에 따라 주권국가 일본을 상대로 한 소송에 대해 미국 법원이 관할권을 갖지 않는지, 국가면제가 배제되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 연방지방법원은 국가면제를 배제한다고 해도 이 사안은 행정부가 판단할 정치적 문제로서, 법원의 관할권이 배제된다고 보아 소를 각하했다.


  원고들의 항소에 따라 연방항소법원(US Court of Appeals for the DC Circuit)은 미국이 모든 종류의 사건에서 국가면제를 인정했다가 1952년에야 상업적 행위 등을 배제하는 제한적(restrictive) 국가면제로 이행하였는데, 그 이전 사건에 외국주권면제법을 적용하는 것은 모든 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것에 대한 일본의 확립된 기대에 반하는 소급효를 가지게 되어 불공정하다고 판단하여 소를 각하했다.


  상고 신청을 수리한 연방대법원은 항소법원 판결 중 외국국가면제법의 소급적용을 부정한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항소법원으로 환송했다. 이에 따라 항소법원은 국가면제 쟁점을 제쳐두고, 이 사건이 정치적 문제, 즉 샌프란시스코조약에 후속하는 한국, 중국, 대만과의 조약에 대한 해석을 수반하는 것이고, 한·일간의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일간의 해석이 다른 상황에서 이 사안은 법원이 다룰 수 없다는 이유로 소를 각하했다.

 


  ‘황금주 vs 재팬’을 가로막은 국가면제는 2021년 한국 법원의 판결로 극복되었나

  ‘황금주 vs 재팬’ 소송에서의 문제점은 국가면제에 대한 논쟁이 젠더적 관점이 누락된 채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국가면제란 ‘국내법원이 외국에 대한 소송에 관하여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이다. 즉,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의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의 국제인권조약은 피해자의 인권구제를 위한 절차 또는 그것을 천명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그 발전의 경로에 ‘여성인권’ 문제가 있다.


  ‘위안부’ 소송을 둘러싸고 2021년 1월과 4월, 한국의 법정에서 승소³와 각하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결국 각하된 건에 대해서는 항소심에서 고등법원이 각하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피해자들이 청구한 각 2억 원의 위자료를 전부 인정했다.

당시 ‘위안부’ 소송의 판결을 둘러싸고 한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국가면제’와 함께 ‘페리니사건’을 언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1944년 독일군에 붙잡혀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한 이탈리아의 루이지 페리니가 1998년 이탈리아의 아레초 지방법원에 독일을 피고로 배상소송을 제기했을 때, 독일 측이 ‘국가면제’로 소송 각하를 주장했던 사건이다.


  원고였던 페리니는 1심과 2심에서 패소했지만, 2004년 이탈리아의 대법원은 독일의 행위가 강행규범을 위반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페리니의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이에 불복하여 2008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는데,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이탈리아 대법원과 정반대의 판단을 하였다. 이에 2014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국가면제를 이유로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의 재판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보호’ 및 ‘재판받을 권리’를 위반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국가면제 원칙에 대하여 ‘인권’을 근거로 한 예외를 설정한 셈이다. 이는 한국의 ‘위안부’ 소송에 시사하는 바가 컸고, 원고 대리인단도 이 부분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페리니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위안부’ 소송과 다르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식민지와 종주국의 관계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페리니 사건은 ‘여성 인권’을 다루는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사례는 식민지와 젠더라는 두 가지 관점이 누락되어 있다.


  2000년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의 판사 중 한 명이었던 크리스틴 친킨은 한국의 ‘위안부’ 소송과정에서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젠더적 관점 없이는 국가면제가 전시의 남성들의 행위나 국가들 간의 이해관계만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제껏 국가면제에 관한 법리는 여성인권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작용된 바 없다. 따라서 이번 소송에서 젠더적 관점으로 국가면제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성의 피해,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폭력이라는 것이 별도의 아젠다가 되기 위해서 혹은 그러한 아젠다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지난 ‘위안부’ 운동이 큰 기여를 했던 건 사실이다. 미국 법원에서 다툰 황금주 대 재팬의 사례에서 피고에게 면죄부를 주었던 국가면제의 쟁점이 2021년 한국 법원의 판결에서 국가면제 법리의 극복을 통해 이제 더 이상 국가폭력에 있어서 여성피해자들이 국제질서 속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질서를 만드는 주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커다란 의의가 있지만, 동시에 젠더의 렌즈를 통해서도 국가면제의 법리가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있다.



3)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 김정곤 부장판사는 고(故) 배춘희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같은 취지로 제기한 1차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

4) 서울중앙지법 민사 15부 재판장 민성철은 고(故) 곽예남·김복동을 비롯한 피해자와 유족 20여 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

5) 서울고법 민사33부 재판장 구회근 부장판사·황성미·허익수 고법판사

6) 서울지방법원에 제출된 크리스틴 친킨의 의견서 No.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