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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직적 국가 범죄

1930년대 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은 제도적으로 ‘군위안소’를 설립하여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하여 성노예로 만들었다. 일본군은 여성들을 동원하여 성노예로 만들었다. 일본군은 여성들을 ‘위안부’라 불렀으나 그 실상은 ‘위안’과는 거리가 먼 강간범죄였다.

강덕경의 증언

'열여섯 살 되는 1944년 6월경에 여자근로정신대 1기생으로 일본에 갔다. 밤이었다. 철조망을 쳐들고 나와 전에 도망갔던 데와 다른 방향으로 갔다. 그런데 공장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군인에게 잡히고 말았다... 차를 타고가 부대에 도착했다... 하루에 10명 이내로 사람을 받았다...' 강덕경의 경우 '여자정신근로령' 1호로 모집되어 비행기 공장으로 간 후 배고픔과 고된 일을 견디지 못해 탈출하였으나 군인에게 잡혀 '위안소'로 보내졌다.

일제강점기 신문기사: '유괴/납치','위안부 급모'' 등

'위안소'가 설립되기 시작하면서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들을 유괴, 납치, 인신매매하는 사건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해군'위안소'기록

'소화10년 재상해총영사관 경찰사무상황', 당시 해군'위안소' 14개가 있었음을 기록

하야오 도라오 논문

...군당국은 군인의 성욕은 억제 불가능이라 하여 중국 부인을 강간하지 않도록 위안소를 설치했다...:1939년 군의관 하야오 도라오 중위의 논문 중

'위안소'건설 명령을 내린 일본군 문서

'구니가시라 지대는 병사의 위안시설 증강을 위해 1월 16일부터 약 10일간의 예정으로 진부산 진지 내에 병영을 축조할 것' 축조를 위한 병력 차출도 함께 지시하고 있으며 이 '위안시설'이 '위안소'라는 것은 다른 문서의 지도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항허가

'한국 육군 천야부대 '위안소'부녀 중국도항의 건', '위안부'여성들의 도항허가에 관한 군문서

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

육군성 병무과가 기안한 '위안부' 모집에 관한 공문서. 일본학자 요시미 요시야키가 이 문서를 찾아내 공개함에 따라 군의 관여를 전면 보인하던 일본정부는 그 입장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이송

배와 트럭에 실려 이송되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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