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사관 1
History를 Herstory로 바꾼 여성들의 목소리

침묵을 깨트리다. 전쟁이 끝나고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역사의 뒤안길에서 그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강요당한 침묵을 깨고 시작된 ‘그녀들의 외침’은 그 진실을 밝히는 새로운 역사의 물줄기가 되어 흘러나갔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전시물과 영상을 통해 법정투쟁, 국제활동 등의 기록을 살펴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수요시위의 현장을 경험한다.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세워진 평화비를 만난다.

1988년 4월 21일~23일

해방 후 돌아오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의문과 책임감으로 뒤를 쫓기 시작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정대협) 초대 공동 대표 윤정옥의 집념 어린 노력과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활동과 민주화의 성취로 새롭게 꽃피기 시작한 한국의 여성운동이 만나 1988년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세상에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1988.4.21~23 여성과 관광문화 세미나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됨

1990.5.18노태우 대통령 방일 맞이 기자회견

1990년대 들어서며 여성단체들은 보다 본격적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진상규명과 사죄를 촉구해 나가기 시작했지만 일본정부는 '당시의 정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1990.11.16

37개 여성단체와 개인들이 참여하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결성

1991.7.22.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최초로 공개증언함

아직 세상으로 나온 피해자가 없던 당시,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피해자임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김학순의 기자회견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50년 간 숨죽여 살아왔던 피해자들은 이를 계기로 용기를 내기 시작했고, 곧이어 개설된 '정신대 신고전화'로 피해 사실을 접수해왔다.

1991.7.22.

정신대 신고전화 개통

1992년 1월 8일 제1차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그러나 일본은 정부의 관여를 계속 부인했고 정대협과 여성계는 1992년 1월 8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시작했다. 이틀 후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 통제 등에 관여한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가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된 사실이 아사히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고, 결국 일본정부는 입장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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