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일: 1991년 12월 12일
생산장소: 일본 사카이현립해방센터
생산자: 황보강자(전 조선인종군위안부문제를생각하는모임 회원)
규모: 1점
유형: 사진류
1991년 12월 12일 김학순이 일본의 한 증언집회에 얼굴을 드러냈다. 8월 14일 자신이 일본군'위안부'였음을 공개 증언하고 4개월이 지난 때였다. 그의 해외 첫 증언집회는 어떻게 열릴 수 있었을까.
재일여성단체<조선인종군위안부문제를생각하는모임>에서는 1991년 12월 일본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도쿄 지방법원을 방문한 김학순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가 김혜원을 초청하여 증언집회<조선인종군위안부의 증언을 듣는 모임>를 열었다. 김학순의 일본 순회 증언집회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본 내 사회문제로 대두됐고 반향을 일으켰다. 재일여성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자신의 경험을 닮은꼴로 여겨 김학순의 증언집회를 주최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어떤 지점을 자기 자신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을까.
재일여성들은 199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윤정옥의 강연을 계기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깊이 공감하여 모이기 시작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응하고자 모인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30~50대의 2,3세대 재일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일본 사회에서 식민지배로 빚어진 민족차별, 가부장제로 일어나는 차별, 여성차별을 느끼며 일상을 살아왔다. 이러한 일상 경험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고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재일여성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련한 각종 모임과 세미나를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서로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2025년을 사는 우리는 어떤 부조리함, 차별, 혐오에 맞서기 위해 모였을까. 12.3비상계엄 이후 광장에 모인 우리는 각각의 깃발과 서로를 확인했다. 과거 서로가 달랐지만 다르지 않았던 경험으로 모인 재일여성, 한국여성,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처럼. 현재 우리도 다르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분노하고 연대할 수 있었다.
1990년 재일여성들과 2025년 여성, 소수자들은 일상에서 억압과 폭력을 경험했다. 그 경험이 응축되어 모였고 대화하자고 서로를 불러들였다. 이 폭력에 함께 맞서자고 말한다.
김혜원은 일본 순회 증언집회 마지막 일정에서 문제의 핵심을 찌른 질문을 받고 시민운동의 본질을 느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본 내의 여러 운동, 즉 노동운동, 교육운동, 인권운동등의 연대 속에서 그 해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단체와의 교류가 있었습니까?"
'나는 시민운동의 역동성에 큰 감동을 받았었다. 국가의 일방적 강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길은 광범위한 시민운동의 확산을 통해 국민 여론을 일으키는 것 뿐이 아니겠는가.'
<김혜원, 1992, 김학순씨의 외침을 듣는 모임에 참가한 보고기, 한국여성신학, 9호>
📍소개글의 표지 사진은 1995년 9월 4일~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베이징여성대회) 사진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성들이 함께 연대하고 목소리 내는 대회였습니다.
📍 2019년 11월 5일 황보강자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사진류 224점, 간행물류과 문서류 13건을 기증했다. 재일여성단체들은 현재도 일본에서 활동 중이며 정의기억연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과 연대하고 있다.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년사>(한울, 2014), <김학순씨의 외침을 듣는 모임에 참가한 보고기>(김혜원, 1992, 한국여성신학)를 참고해 작성했다.
발행날짜 2025년 1월 31일
생산일: 1991년 12월 12일
생산장소: 일본 사카이현립해방센터
생산자: 황보강자(전 조선인종군위안부문제를생각하는모임 회원)
규모: 1점
유형: 사진류
1991년 12월 12일 김학순이 일본의 한 증언집회에 얼굴을 드러냈다. 8월 14일 자신이 일본군'위안부'였음을 공개 증언하고 4개월이 지난 때였다. 그의 해외 첫 증언집회는 어떻게 열릴 수 있었을까.
재일여성단체<조선인종군위안부문제를생각하는모임>에서는 1991년 12월 일본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도쿄 지방법원을 방문한 김학순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가 김혜원을 초청하여 증언집회<조선인종군위안부의 증언을 듣는 모임>를 열었다. 김학순의 일본 순회 증언집회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본 내 사회문제로 대두됐고 반향을 일으켰다. 재일여성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자신의 경험을 닮은꼴로 여겨 김학순의 증언집회를 주최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어떤 지점을 자기 자신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을까.
재일여성들은 199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윤정옥의 강연을 계기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깊이 공감하여 모이기 시작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응하고자 모인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30~50대의 2,3세대 재일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일본 사회에서 식민지배로 빚어진 민족차별, 가부장제로 일어나는 차별, 여성차별을 느끼며 일상을 살아왔다. 이러한 일상 경험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고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재일여성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련한 각종 모임과 세미나를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서로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2025년을 사는 우리는 어떤 부조리함, 차별, 혐오에 맞서기 위해 모였을까. 12.3비상계엄 이후 광장에 모인 우리는 각각의 깃발과 서로를 확인했다. 과거 서로가 달랐지만 다르지 않았던 경험으로 모인 재일여성, 한국여성,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처럼. 현재 우리도 다르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분노하고 연대할 수 있었다.
1990년 재일여성들과 2025년 여성, 소수자들은 일상에서 억압과 폭력을 경험했다. 그 경험이 응축되어 모였고 대화하자고 서로를 불러들였다. 이 폭력에 함께 맞서자고 말한다.
김혜원은 일본 순회 증언집회 마지막 일정에서 문제의 핵심을 찌른 질문을 받고 시민운동의 본질을 느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본 내의 여러 운동, 즉 노동운동, 교육운동, 인권운동등의 연대 속에서 그 해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단체와의 교류가 있었습니까?"
'나는 시민운동의 역동성에 큰 감동을 받았었다. 국가의 일방적 강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길은 광범위한 시민운동의 확산을 통해 국민 여론을 일으키는 것 뿐이 아니겠는가.'
<김혜원, 1992, 김학순씨의 외침을 듣는 모임에 참가한 보고기, 한국여성신학, 9호>
📍소개글의 표지 사진은 1995년 9월 4일~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베이징여성대회) 사진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성들이 함께 연대하고 목소리 내는 대회였습니다.
📍 2019년 11월 5일 황보강자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사진류 224점, 간행물류과 문서류 13건을 기증했다. 재일여성단체들은 현재도 일본에서 활동 중이며 정의기억연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과 연대하고 있다.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년사>(한울, 2014), <김학순씨의 외침을 듣는 모임에 참가한 보고기>(김혜원, 1992, 한국여성신학)를 참고해 작성했다.
발행날짜 2025년 1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