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기록



<소장기록 콘텐츠>에서는 중요하고 의미있는 기록물을 뽑아 보여주고자 합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피해자와 활동가의 활동 기록, 피해자의 유품, 증언 영상, 사진 등 다양한 기록물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From the Archives — No. 14 | 애도하는 힘에 대하여 The Power of Mourning: <낮은 목소리> 강덕경 장례식, 노제 현장 사진


  • 생산일: 1997년 2월 3일~2월 4일
  • 생산장소: 서울중앙병원 장례식장, 안국사거리, 일본대사관~평화로, 탑골공원
  • 생산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 유형, 규모: 사진류, 14건


1997년 2월 3일부터 4일까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나눔의집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강덕경의 서울중앙병원 장례식과
노제(路祭)를 치뤘다.
장례식장에는 추모의 말을 전하는 활동가들, 그 모습을 담는 언론사 촬영 기자들, 목 놓아 우는 '나눔의집' 할머니들이 있다.

2월 4일, 서울중앙병원에서 발인 후 강덕경을 애도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을 출발하여 안국동 사거리, 종로 중심가를 지나 탑골공원까지 거리를 행진했다. 행렬이 지나는 이 거리는 강덕경이 활동하면서 밟던 그 거리와 같다. 강덕경의 마지막 유언인 '일본 민간기금 지급 중단하라', '일본은 전쟁범죄 사죄하라'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기록영화 <낮은 목소리>, <낮은 목소리2>, <낮은 목소리3-숨결>의 감독 변영주는 자신의 짝꿍 할머니이자 다큐멘터리 주인공인 강덕경을 이렇게 기억했다.
‘운동가의 길을 걸은 최초의 할머니’, ‘'나눔의집'의 조용하고 다정한 리더’, ‘화가’, 악착같이 살아왔음에도 ‘자신의 품을 내어주는 운동가’로 말했다.
(2019. 4. 20.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월례세미나_변영주)

강덕경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1997년 노제에 백여 명이 모여 애도하는 사진은 그의 삶이 공동체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애도의 자리에서 그의 삶과 오늘날 우리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사유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추모식과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식은 닮아 있다. 죽은 이들을 향한 사회적 낙인은 살아남은 ‘우리’의 애도까지 어렵게 만든다. 마치 애도에 위계가 있는 듯하다. 
애도의 공론장에서 우리는 이들의 삶과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우리 삶을 억압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애도의 공론장을 직접 마련하여 떠난 이들과 남겨진 사람들을 연결했다. 현재도 과거에도.  

국가가 시민장을 통제해도 우리는 그의 부당함과 우리의 부당함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위해 모여야 한다.

✨ 참고자료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월례세미나 <할머니의 삶을 보다>: 강덕경 "언제까지나 함께 있자고..내가 사랑한" 녹화 영상, 2019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1997년 대표자회의록
- 정신대문제대책활동소식 제11호, 1997

✨관련 행사















✨읽을거리

[브런치북] 낮은 목소리 제작기_황마담(하원영화사 프로듀서)